복지부, 의료현안협의체 등 가동하며 '의대증원' 절차적 정당성 확보
그땐 코로나 방역으로 진료차질 부담 막대...지금은 일상의료체계 회복
의사파업 때 타협 없이 단호한 대응 거듭 강조...총선 겨냥 '정무적 판단(?)'

[라포르시안] 전국 40개 의과대학의 입학정원은 2006년부터 19년째 3058명으로 유지되고 있다. 그보다 전에는 입학정원과 정원외, 편입학을 더해 3,507명으로 더 많았다. 2000년 의약분업 도입을 앞두고 의료계가 대규모 파업에 나서면서 '의료대란' 사태가 벌어지자 당시 정부가 의료계 달래기용으로 의대정원 감축에 합의했다. 

이후 전국 의대 입학정원은 '3058명'으로 20년 가까이 유지되면서 불변의 고정값처럼 인식돼 왔다. 그러던 중 2020년 당시 문재인 정부에서 의대 입학정원을 2022학년도부터 해마다 400명씩 10년간 증원하는 계획과 함께 지역의사제 도입, 폐교한 서남대 의대 정원(49명)을 활용한 공공의대 설립 계획을 내놓았다. 

하지만 2020년 당시 의대 증원 추진은 절차적으로 부실했고, 의견수렴 및 여론형성 과정 부재, 감염병 재난이라는 상황이 맞물리면서 정책 추진의 동력을 얻지 못했다. 정부가 의대정원을 증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자 의사단체가 강력 반발하며 집단휴진 투쟁에 나섰다.

무엇보다 수련병원 전공의들이 가운을 벗고 파업에 적극 나서면서 대학병원 응급실과 수술실이 마비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코로나19 방역 대응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확진자가 계속 늘어나는 상황에서 의료계의 협조가 절실했던 정부 입장에서는 의대증원을 밀어붙일 수도 없었다. 당시에는 코로나19 방역 대응으로 의료진에 대한 국민 인식이 상당히 우호적인 측면도 여론에 큰 영향을 미쳤다. 

결국 의정·의당합의를 통해 의대증원 추진을 코로나19 유행이 안정화된 이후 원점에서 재논의하기로 했다. 사실상 정부가 의료계의 반발에 밀려 의대증원 추진을 포기한 셈이었다.

이번에는 윤석열 정부가 지난 6일 의대 증원 규모를 확정하고, 2025학년도부터 입학정원 2000명을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예정된 수순이지만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의사단체가 의대 증원 규모 발표에 강력히 반발하며 집단행동을 예고하고 나섰다. 

의사협회는 지난 6일 정부가 의대 증원을 일방적으로 발표할 경우 이필수 회장을 비롯한 현 집행부가 총사퇴하고 설 연휴 이후부터 파업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했다. 

이필수 의협 회장은 “정부가 2020년 9·4 의정합의 정신을 위반하고, 의료현안협의체를 통한 의료계와의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의대정원 확대 발표를 강행할 경우 의협  집행부는 총사퇴할 것이며 즉시 임시대의원총회 소집 및 비대위 구성에 들어가겠다”며 “임총에서 의장과 상의 후 지난해 12월 실시한 파업 찬반 회원 설문조사 결과를 즉각 공개하고, 즉각적인 총파업 절차에 돌입할 것”이라고 했다. 

2020년 의사총파업 당시 전공의들이 의대 정원 확대 재논의 등을 촉구하며 의사 가운을 벗어 반납하고 있다. 
2020년 의사총파업 당시 전공의들이 의대 정원 확대 재논의 등을 촉구하며 의사 가운을 벗어 반납하고 있다. 

2020년 의사파업 때 선봉에 섰던 대한전공의협의회와 의대생 단체에서도 의대증원 추진에 대응해 집단행동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2020년 의사파업 때와 비교해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당시 문재인 정부는 의대정원 확대 관련한 의료계와 사전 협의나 논의는 물론 사회적인 의견수렴 절차나 여론형성도 없이 다소 급하게 의대정원 확대 정책을 꺼냈다. 게다가 당시는 코로나19 2차 대유행이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설익은 의대정원 확대 방안을 추진하자 의료계가 반발하며 집단행동에 나섰고, 진료 공백 우려가 커지면서 의대정원 확대 정책을 고수할 동력을 얻지 못했다. 

이번에는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우선 보건복지부가 작년 1월 말부터 대한의사협회와 의료현안협의체를 구성하고 지역의료, 필수의료, 의학교육 및 전공의 수련체계 발전방안 등을 다루면서 의대정원 확대 추진을 위한 여론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작년 5월 코로나19 엔데믹을 선언하면서 '의대정원 확대를 코로나19 안정화 이후 의정협의체에서 논의'하기로 약속한 의정합의를 근거로 의대증원 논의에 박차를 가했다. 

전국 40개 의대를 대상으로 2025학년도 입시에서 증원을 희망하는 수요 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발표하면서 의대 증원 추진을 구체화하는 것은 물론 사회적인 여론형성에도 더욱 박차를 가했다. 

동시에 지역·필수의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료인력 확충, 지역의료 강화,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보상체계 개선 등을 골자로 하는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도 마련했다. 이를 통해 의대 증원으로 의사인력을 확충하는 것이 지역·필수의료 문제 해결을 위한 중요한 방안이란 논리로 의료계를 설득해 왔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근거로 정부는 의대 증원 추진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의료계와 논의하고, 국민 여론을 수렴하는 절차를 충분히 거쳤음을 강조하고 있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지난 6일 의대정원 확대 방안 긴급 브리핑에서 "그간 정부는 의료계를 비롯해, 사회 각계각층과 다양한 방식으로 130차례 이상 소통했다"며 "작년 1월부터 의사협회와 의료현안협의체를 발족해 총 28회 소통했고, 대한병원협회, 종별 병원협회 등 병원계와 대한전공의협의회 등 의료계와도 적극적으로 소통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의료계는 "정부가 의료현안협의체를 통한 의료계와의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의대정원 확대를 강행했다"고 주장하지만 시민단체 등은 "의협의 ‘일방적이고 졸속적인 의대 정원 확대 추진 반대’ 주장은 자신들의 불성실한 협의 태도를 숨기고, 합의 실패 책임을 정부에 떠넘기려는 졸렬한 태도"라며 되레 의료계를 비판하는 분위기다.  

2020년 의사파업 때와 가장 크게 달라진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코로나19 엔데믹'이다. 당시에는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모든 의료자원을 감염병 대응과 확진환자 치료에 쏟아부을 때였다. 감염병 대응 최일선에서 고군분투하는 의료진은 '코로나 전사', '코로나 영웅'으로 불리며 사회전반에 걸쳐 이들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높았다. 

이 때문에 코로나19 유행 상황에서 정부가 설익은 의대 증원 정책을 들고 나와 의사단체의 반발을 키우고 의료대란을 초래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결국 의대증원 추진은 전공의 등이 집단휴진에 나서면서 감염병 재난 상황에서 진료 차질마저 빚어졌고, 이에 당황한 정부가 의사협회 '9.4 의정합의'를 맺으며 봉합하는 수순을 밟았다.

지금은 코로나19 엔데믹으로 전환한 지 8개월째를 맞았다. 

지난 6일 복지부의 의대정원 확대 관련 브리핑에서 '2020년 의대정원 증원을 시도했던 때와 비교해 지금 복지부의 대응이나 정책적 방향 이런 게 달라진 게 있는지'를 묻는 질문이 나왔다. 

조규홍 장관은 "그때는 코로나19의 감염이 심각해서 우선 국민의 건강과 생명 확보가 최우선이라고 생각해 아마 타협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지금은 우선은 의료계가 협조해 주실 거라고 믿고, 만약에 불법 집단행동을 하게 된다면 의료법과 관련법에 따라서 단호한 조치를 취하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그때는 코로나19의 감염이 심각해서 우선 국민의 건강과 생명 확보가 최우선이라고 생각해 아마 타협한 것으로 알고 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2월 6일 의대정원 확대 긴급브리핑 질의응답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6일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전국 어디에 살든 좋은 병원과 의사에게 진료받을 수 있도록 지역 병원에 제대로 투자하고 지역 의대 중심으로 정원을 배정해 지역의료 완결 체계를 바로 세우겠다"며 "저와 정부는 오직 국민과 나라의 미래만 바라보며 흔들림 없이 의료개혁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사진 출처: 대통령실 홈페이지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6일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전국 어디에 살든 좋은 병원과 의사에게 진료받을 수 있도록 지역 병원에 제대로 투자하고 지역 의대 중심으로 정원을 배정해 지역의료 완결 체계를 바로 세우겠다"며 "저와 정부는 오직 국민과 나라의 미래만 바라보며 흔들림 없이 의료개혁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사진 출처: 대통령실 홈페이지

2020년에는 코로나19 대응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의료계와 타협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고, 의사파업이 벌어지면 타협 없이 단호하게 대응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복지부는 지난 6일 의협이 총파업 돌입을 선언하자 보건의료 위기 단계를 '경계’ 단계로 상향 발령했다. 특히 '의료법 제59조'에 따라 의협 집행부 등을 대상으로 '집단행동 및 집단행동 교사 금지'를 명령했다. "명령을 위반해 국민의 건강과 생명에 위협을 주는 불법행위에 대해선 행정처분, 고발조치 등을 통해 법에서 규정한 모든 제재조치를 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단호한 대응' 기조를 미리 과시한(?) 셈이다.  

4월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그것도 총선 여론이 형성되는 설연휴를 앞둔 시점에 의료계 반발이 뻔한 '의대 입학정원 2000명 확대'를 발표한 배경도 살펴봐야 한다. 

의대증원 확대 추진이 총선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란 '정무적 판단'이 있지 않았을까 짐작해 볼 수 있다. 만일 그렇다면 의료계가 집단행동에 나섰을 때 정부의 대응 수위는 높아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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